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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먹거리|프레첼_ 팔자 모양의 맛난 간식

8’자 모양, 수도사의 빵 - ‘프레첼’
 

프레첼
뉴욕이나 필라델피아 같은 미국 동부 대도시 번화가를 걷다 보면 ‘8’자 모양으로 생긴 빵을 줄줄이 걸어놓고 판매하는 노점상을 쉽게 볼 수 있다. 밀가루 반죽을 길게 늘리고 꼬아 만든 이 빵의 이름은 ‘프레첼’(pretzel)이다.
우리는 흔히 ‘프레첼’이라고 부르지만 미국식으로는 ‘프렛즐’이라 부른다. 쫄깃한 식감이 떡과 비슷하고, 달지 않고 찝찔하면서 구수해서 한국사람 입에도 꽤 맞는다. 출출한 뉴요커들이 간식으로 주로 먹지만, 하나만 먹어도 속이 든든할 만큼 밀도가 높아서 간단한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하다.

기도하는 아이를 닮은 빵

이름에서 눈치 챘겠지만 프레첼은 독일계 빵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음식 역사학자들은 프레첼이 처음 만들어진 곳을 이탈리아 북부 또는 프랑스 남부로 추정한다. 만들어진 시기는 1400여 년 전인 서기 610년. 역사가 꽤 길다. 프레첼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는지는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프레첼의 탄생과 관련해 정설(定說)처럼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 북부 수도원에 가톨릭 수도사가 살았다고 한다. 수도사는 어린 아이들을 무척 예뻐했다. 사랑스런 아이들에게 간식을 주고 싶었지만, 마땅한 먹을 거리를 구하지 못했다. 궁리 끝에 수도사는 빵을 만들고 남은 반죽을 가늘게 길게 밀었다. 밧줄처럼 길게 뽑은 빵 반죽을 그냥 구워 주자니 재미가 없었다. 수도사는 두 손 모아 기도 드리는 아이를 떠올렸다. 그 모습을 본 따 2개의 원이 중간에서 겹치는 모양으로 빵 반죽을 만들어 굵은 소금을 듬성듬성 뿌린 다음 화덕에 구웠다.

수도사는 자신이 만든 이 새로운 간식을 기도문 잘 외우는 아이에게 상(賞)으로 주기로 했다. 그리고 이 빵에 ‘작은 상’을 뜻하는 라틴어 ‘프레티올라’(pretiola)란 이름을 붙였다. 쫄깃하면서 구수한 프레티올라는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빵의 인기는 곧 어른들에게로 확산됐다.

빵집 종업원의 실수로 바삭해져

프레티올라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 오스트리아와 독일 등 북유럽으로 넘어갔다. 독일어권에서 프레티올라는 ‘프레첼’이란 이름을 얻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브레첼’(bretzel)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여전히 그렇게 불린다.

이처럼 프레첼은 원래 빵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요즘 프레첼은 쫄깃한 빵 그리고 바삭한 과자 두 형태로 존재한다. 과자 형태의 단단한 프레첼이 등장한 건 피곤한 빵집 종업원 덕분이라고 한다. 한 빵집에서 일하던 젊은이가 프레첼 반죽을 오븐에 넣어둔 채 잠들었다. 얼마 후 눈을 떠보니 오븐은 불이 꺼진 상태. 프레첼이 구워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 젊은 종업원은 오븐에 장작을 넣고 다시 불을 지폈다. 하지만 오판(誤判)이었다. 프레첼은 이미 다 구워진 상태였다. 두 번 구운 프레첼은 딱딱하게 변했다.

빵집 주인은 화를 내며 프레첼을 버리려 했다. 그런데 빵집의 다른 종업원들이 이 팔 수 없게 망가진 프레첼을 먹는 게 아닌가. 주인이 버리려던 프레첼 중 하나를 입에 넣었다. 두 번 구워진 프레첼은 먹을 만했다. 실은 먹을 만한 정도가 아니었다. 구수하면서 바삭바삭 씹는 맛이 좋았다. 수분이 줄어들어 오랫동안 보관 가능하다는 장점도 생겼다.


부시 美 대통령을 쓰러뜨린 빵

어떤 음식이나 마찬가지지만, 프레첼 역시 미국을 거치면서 독일의 빵에서 세계의 빵으로 발전했다. 프레첼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에 올라탄 독일·네덜란드계 이민자들을 통해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갔다. 프레첼이 처음 미국 문헌에 등장하는 건 19세기 초인 1824년, 첫 프레첼 전문점이 펜실베니아에 문을 연 건 1861년이다.

프레첼은 미국 동부에서 인기가 높다. 특히 펜실베니아에 있는 필라델피아는 ‘빅 프레첼’(Big Pretzel)이라 불릴 정도. 필라델피아 시민들은 노란 양 겨자를 바른 ‘오리지널’ 프레첼을 즐겨 먹는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프레첼은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난 2002년 일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TV를 보다가 갑자기 쓰러져 왼쪽 뺨에 달러화 지폐 절반 크기의 찰과상을 입고 아랫입술에 멍이 든 사건이 발생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을 쓰러뜨린 건 다름 아닌 프레첼. 부시는 미식 축구 중계 방송을 시청하면서 프레첼을 먹고 있었는데, 대충 씹어 삼킨 모양이다. 프레첼이 기도를 막아 순간적으로 졸도한 것으로 진찰 결과 밝혀졌다. 사건 직후 부시는 연설을 하면서 “어머니, 듣고 계세요? 어머니는 ‘프레첼을 먹을 땐 반드시 꼭꼭 씹어 삼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어머니 말씀을 잘 들었어야 했는데”라고 말해 웃음을 유도했다.

부시 대통령은 프레첼 때문에 죽을 뻔했지만, 오스트리아는 프레첼 덕분에 살았다. 1510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오스트리아 수도 빈(Wien)을 공격했다. 여러 차례 공격이 실패로 끝나자, 투르크 군사는 빈 성벽 밑으로 터널을 파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판매할 프레첼을 굽던 제빵업자들이 성벽 아래에서 들리는 수상한 소리를 들었고, 즉시 군대에 알렸다. 덕분에 빈은 함락 당하는 운명을 벗어날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 황제는 프레첼 제빵 장인 조합에 조합의 상징으로 사용하도록 문장(coat of arms)를 수여해 공로를 치하했다. 방패 모양 문장에는 사자와 프레첼이 당당하게 새겨져 있다.


국내에서 프레첼을 맛보려면

매년 전 세계적으로 소비되는 1억3,000여 달러 어치의 프레첼은 대부분 과자 형태다. 한국에서 소비되는 프레첼도 거의 전부 과자 형태다. 대부분의 한 국사람들이 프레첼을 맥주 안주 또는 과자로 알고 있는 건 그래서다. 호텔 베이커리나 고급 제빵점에서 가끔 맛볼 수 있었던 빵 형태 프레첼이 최근 일반화되고 있다. 6~7년여 전부터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한 프레첼 전문점 덕분이다. 이중 ‘앤티 앤스’(Auntie Anne’s, www.auntieannes.co.kr)가 가볼 만하다.

‘앤티 앤스’는 1988년 펜실베니아 노점상으로 시작,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 900여개 매장을 운영하는 프레첼 전문점으로 지난 2001년 한국에 진출했다. 계피, 양파, 건포도, 할라피뇨 고추 등 각종 재료를 섞거나 얹은 프레첼 종류가 다양하다. 가격은 한 개 2,000원. 신세계백화점 본점(02-310-5277), 현대백화점 무역점(02-3467-8387), 현대백화점 목동점(02-2163-2069), 이화여대점(02-365-1654) 등에 입점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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