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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 손바닥 인사

손바닥 인사


시인 천상병은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꼭 손바닥을 내보이는 인사를 했다. 그것은 오래된 그만의 애정 표현이었다. 그래서 그의 손바닥 인사를 받지 못한 사람은 천상병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도 거의 틀림이 없었다.


어느 날 천상병은 출판사에 들렀다가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그는 지옥에서 부처님을 만난 것처럼 아주 반가운 표정으로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는 이내 “천원만” 하고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는 천상병이 손을 내밀면 언제라도 돈을 내놓고 마는 순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그가 말꼬리를 달았다.


“그런데 천 선생님, 제게도 거절할 기회를 한 번쯤 주십시오.”

“아무 때나 거절하이소. 거절하는 건 자유 아닙니까.”

“그렇지가 않습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사람들이 많을 때 이야기를 꺼내서 미리 거절할 기회를 빼앗아 버립니다. 제가 천 원을 드리지 않으면 여러 사람 앞에서 제가 인색한 사람이 되고 또 제게 천 원을 거절당했다면 천 선생님 체면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천상병은 속셈을 들키기라도 한 듯이 커다랗게 웃었다.


그러나 천상병은 손바닥을 보여 준 대가로 부르는 가격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친분 정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정해졌다. 최하로는 술 한 잔 값에서 최고로는 그 열 잔 값이었는데, 그 정도면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지는 금액이었다. 때로는 형편이 나아진 친구 쪽에서 먼저 금액을 올리자고 요구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문디자식, 수작하지 마라. 넌 아직 2백 원짜리야” 하고 퇴짜를 놓고, 자기에게 손바닥을 내보이지도 않았는데 그런 사람 옆에 있다가 돈을 주려고 하면 “문디자식, 내가 언제 니보고 돈 달라 하드나” 하고 퉁박을 주었다.


천상병은 항상 싫고 좋은 것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전부를 내보이듯이 땟국물 가득한 손바닥을 내보이면 그의 그 천진난만함에 모두들 넘어가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