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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식품

갯벌의 산삼’ 낙지

갯벌의 산삼’ 낙지

‘봄 조개, 가을 낙지’
개도 싫다는 ‘오뉴월 낙지’


바다의 인삼이 해삼(海蔘)이라면 낙지는 갯벌의 산삼이다. 그만큼 몸에 좋다는 말인데 정약용의 형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마른 소에게 낙지를 서너 마리 먹이면 금새 힘을 되찾는다”고 했다.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것이 낙지는 타우린을 많이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우린은 피로회복에 효과가 있는 물질로 흥분효과도 있어 일제시대 때 가미가제 특공대원들이 출격하기 전, 타우린을 투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낙지는 특히 가을 낙지가 좋아 ‘봄 조개, 가을 낙지’라는 말이 있다. 이긍익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서 달마다 새로운 음식과 먹거리를 조상에게 바치는 천신(薦新)행사를 소개하면서 2월이면 종묘에 생 낙지를 올린다고 했다. 또 알을 낳기 직전인 겨울에 잡히는 낙지도 최고로 쳤던 모양이다.

반면 봄 여름 낙지는 썩 환영을 받지 못했다. 낙지는 봄철에 알을 낳은 후 2~3개월 동안 알을 돌보는데 오뉴월 알이 부화할 무렵에는 태어나는 새끼를 위해 모든 영양을 다 쏟아내고 죽는다. 그래서 “오뉴월 낙지는 개도 안 먹는다”는 속담까지 생겨났다.

낙지에 관한 속담은 우연찮게도 개와 연결된 것이 꽤 있다. “개 꼬라지 미워서 낙지를 산다”라는 말이 있는데 고기를 사면 먹다 남은 뼈다귀를 개에게 주는데 개 꼴이 미워서 뼈가 없는 낙지를 산다는 말이다. 남 좋은 일은 하지 않겠다는 말로 “죽 쒀서 개 주기 싫다”는 뜻이다.

과거 보는 수험생 ‘게와 낙지’는 금기식품

갯가의 산삼이라고 즐겨 먹는 낙지지만 옛 문헌에 시험을 앞두고는 먹지 말라고 했으니까 수험생들은 먹을 때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조선 정조 때 활약했던 실학자 이덕무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일반 사람들은 과거를 볼 때 게와 낙지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게는 한자로 해(蟹)인데 해(解)자가 쓰여 있기 때문에 해산(解散)이란 것을 거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낙지를 먹지 않는 이유도 낙지는 한자로 장거(章擧)라고 하는데 속명이 낙제(絡蹄)이므로 발음이 낙제(落第)와 비슷해서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낙지라는 단어의 어원은 한자어 낙제(絡蹄)가 변형되어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글자씩 풀어 보면 얽힐 락(絡)에 발 제(蹄)를 쓰는데, 락(絡)은 말의 가슴에 매는 줄, 제(蹄)는 말 발굽을 뜻한다. 다리가 얽혀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영어로도 채찍과 같은 팔이 달려 있는 문어라고 해서 ‘whip-arm octopus’라고 한다.

조방낙지의 조방은 조선방직
연포탕은 원래 두부국의 의미


낙지하면 여러 요리방법이 있지만 아무래도 조방낙지와 연포탕을 빼놓을 수 없다. 조방낙지와 연포탕의 유래를 짚고 넘어가면 의외의 사실을 알 수 있다.

일종의 낙지볶음밥이라고 할 수 있는 조방낙지 중에서 조방은 방직회사인 조선방직(朝鮮紡織)의 준말이다. 부산광역시 홈페이지를 보면 부산시 동구 범일동 일대 자유시장 자리에 옛날 조선방직회사가 있었는데 조선방직 공장 앞의 낙지볶음 골목이 유명해지면서 붙은 이름이다. 조선방직은 일제시대 수탈의 표본으로 가혹한 노동조건과 노동탄압으로 유명한데 이 공장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주로 먹었던 애환이 담긴 음식이다. 나중에 자유시장이 서면서 외지 상인들이 많이 오게 됐고 이들의 입소문을 타고 조방낙지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연포탕은 맑은 국물에 낙지를 살짝 데쳐 삶은 것을 말하지만 원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니라 주로 맑은 두부국을 뜻하는 말이었다.

홍만선의 산림경제(山林經濟)에 연포탕 끓이는 법이 나온다. 연포탕 끓이는 법(煮軟泡法)이라고 해서 “두부나 무, 고기 등을 넣고 끓이는 맑은 장국으로 연포탕은 두부(泡)를 만들 때 꼭 누르지 않으면 연하니, 잘게 썰어 한 꼬치에 서너 개 꽂아 흰 새우젓국과 물을 타서 끓이되 베를 그 위에 덮어 소금물이 스며 나오게 한다”고 했다.

연포탕(軟泡湯)이 왜 두부 국이냐 하면 포(泡)가 두부이기 때문이다. 옥편을 보면 거품이라는 뜻과 함께 포(泡)에는 두부라는 뜻도 있다. 옛날 한자에서는 부풀어 올라 부드러운 물건을 ‘포’라고 했으니 주로 두부를 말한다. 그런데 해안 지방에서 두부 대신에 연체동물인 낙지를 넣어 연포탕을 끓이게 되면서 지금은 연포탕이 곧 낙지탕을 뜻하게 됐다.